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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서론 요약

  『존재와 시간』서론 요약 - 존재물음의 영역확보

3조 정승연

  『존재와 시간』의 서론은 하이데거 사유의 문제설정과 전개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하이데거는 서론에서 자신이 설정한 문제가 서 있을 영역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둔다. 문제가 서 있을 영역을 확보한다는 것은 존재론(형이상학)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문제제기가 어떤 유효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자기 사유가 사유로서 힘을 발휘할 입지점을 마련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서론의 제목이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의 설명”이라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론의 구조는 하이데거의 전략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서론 1장은 물음의 ‘필연성’과 ‘우위’를 다루고 2장은 탐구의 ‘과제’와 ‘방법’ 그리고 ‘개요’를 다룬다. 즉, 왜 묻고 있는지, 무엇을 묻는 것인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서론에서 이미 밝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론에서의 문제제기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후의 사유가 어떤 의미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서론 1장에서는 하이데거가 왜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는지, 자기 이전의 존재론과 자신의 존재론이 어떤 점에서 결정적으로 구분되는지를 밝히고, 물음의 가진 필연성과 우위의 근거를 제시한다.
  하이데거는 지금까지 존재론의 역사에서 물어진 것은 ‘존재’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존재자’에 대한 물음이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존재’에 대한 물음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망각’된 것이라는 점이다. 어째서 망각된 것인지에 관한 언급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정황상 ‘존재’라는 개념이 가진 ‘보편성’과 ‘무내용성’이 물음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언급은 그의 사유가 ‘원형(Urform)’에 대한 열망, 회귀적 경향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존재자에 대한 탐구로 점철된 존재론의 역사에서 ‘존재’개념은 그것이 가진 보편성 때문에 정의될 수 없는 개념으로 치부되었다. 하이데거는 상위의 개념으로부터 하위의 개념을 정의하는 방식으로는 ‘존재’개념을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정의될 수 없다고 해서) ‘존재’개념이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의문도 갖지 않는 ‘존재’의 개념은 무수히 사용되는 가운데 침묵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존재’개념은 하이데거에겐 ‘망각’의 근거를 밝혀줄 미개척의 영토가 된다.
  존재 망각의 역사와 기원을 밝힌 후 하이데거는 본격적으로 ‘물음’을 가다듬는다. 물음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물어지고 있는 것’, ‘물음이 걸려 있는 것’, ‘물음이 꾀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물어지고 있는 것’은 물음이 항상 ‘~대한’ 물음이라는 점에서 물어지는 ‘대상’을 지시하고 있는데, 그 ‘대상’이란 바로 ‘존재’이다. ‘물음이 걸려 있는 것’은 물어지는 ‘대상’에 대한 선(先)정의, 즉 그것에서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 물을 수도 없다는 점에서 물음에 포함된 ‘이해’이다. 이 ‘이해’의 근거는, 묻고 있는 주체인 우리 각자가 결국은 ‘존재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물음이 걸려 있는 것’은 ‘존재자’ 자체이다. 이 ‘존재자’는 ‘물음’이 가능한 존재자라는 점에서 ‘현존재(dasein)’이다. ‘물음이 꾀하고 있는 것’이란 대상과 이해 사이에서 작동하고 있는 물음의 ‘의도’이다.
  하이데거가 수행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물음은 ‘구조계기(Strukturmomente)'라는 그의 표현대로 위의 세 가지 축을 가지고 진행되며, 이 작업은 물음의 구조를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물음을 예리하게 벼리는(하이데거의 표현으로는 ‘투명하게’) 작업인 것이다.
  물음 자체를 예리하게 다듬는 순간 ‘순환논증’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겨난다. 즉 ‘존재자’를 ‘존재’로부터 규정하려 하는데, 이미 ‘물음이 걸려 있는 것’(존재자 자체)에서 ‘존재’에 대한 선(先)이해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이것이 전통 논리학에서의 ‘순환논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존재론이 ‘존재’가 없는 가운데 진행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며, 그렇게 된 이유는 ‘존재’가 이미 우리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연역적’으로 추론해서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기에 있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기만 하면 되고, 그렇기 때문에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결론을 전제함으로써 빚어지는 순환논증의 오류에서 자유롭다고 말한다.
  다듬어내어 하나의 완결된 물음이 된 존재에 대한 물음은 철학적 질문의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 한다. 이 ‘우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제기되는데 첫째, 존재론적인 우위, 둘째, 존재적 우위이다. 존재론적인 우위는 지금까지의 존재론이 “풍부하고 꽉 짜여진 범주체계를 구사하고 있다고 해도” 본질이 되는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을 회피하고 있는 이상 그것들은 “맹목적”이고 그것들의 의도(‘근거’를 밝히고자 하는 존재론의 의도)는 전도된 채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첫 번째 우위가 확보된다. 두 번째 우위는 존재를 다루는 학(學)으로서 ‘존재’의 우위인데 이것은 ‘존재’가 모든 존재자들의 ‘본질구성틀’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존재론’에 비해서 선차적이다. 이 ‘우위’를 통해서 하이데거는 자신의 존재론을 ‘기초 존재론’으로 정립한다.
  ‘물음’의 의미와 ‘물음’이 가진 존재론적, 존재적 ‘우위’를 통해 사유가 전개될 장(場)을 마련한 후, 전개의 방식, 즉 사유의 방법과 그러한 방법으로 펼쳐진 지형에 대한 논의로 이동한다.
  서론 2장의 제목은 “존재물음의 정리작업에서의 이중의 과제, 탐구의 방법과 그 개요”이다. ‘이중의 과제’란 첫째, 현존재를 분석함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기초를 창출하는 과제, 둘째,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데 있어 ‘망각’의 역사를 공유해온 존재론의 역사를 해체하는 과제이다. ‘존재’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기초를 창출하는 작업에 있어서 하이데거는 ‘물음이 걸려 있는 것’으로서 이미 ‘존재’에 대한 선이해를 가지고 있는 현존재를 단서로 삼는다. 즉, ‘현존재’는 그것의 고유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존재’에 대한 ‘접근양식’을 획득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거기에 있는’ 존재로서 ‘현존재’가 지닌 ‘일상성’이다. 현존재가 가지고 있는 이 ‘일상성’은 현존재의 존재양식이며 이것으로부터 존재를 규정하는 ‘구조’를 밝힐 수 있다고 한다. 현존재의 ‘일상성’은 곧 현존재가 처해 있는 상황, 즉 ‘시간성’ 속에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존재의 ‘일상성’에 주목함으로써 그것이 어디에(시간) 자리잡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으며, 그것이 처한 조건으로서 ‘시간’을 탐구해야 할 과제를 획득하게 된다. 이 과제를 요약하여 ‘존재의 존재시성(Temporalität)을 산출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존재론의 역사를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전통’이 넘겨주는 것에 대해 탐구하여 밝혀내기보다는 그것의 ‘자명성’에 길들여진 채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 (과거와 현재를 모두 포함하여)세계에 빠져서 반사적으로 자신을 해석하려는 경향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작업으로 배치된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하이데거는 스콜라 철학, 데카르트, 칸트,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적 작업이 수행될 것임을 암시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를 존재물음을 망각 속에 빠트린 주범으로 지목한다. 반면 플라톤은 ‘대화술’이라는 방법론을 펼침으로서 존재자가 ‘마주-대함’이라는 고려 속에서 존재 해석을 얻고 있다면서,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한다.
  이후의 절에서는 탐구의 현상학적 방법에 대한 설명과 논구의 개요가 이어진다. ‘현상학’은 ‘사태 자체로!’라는 구호 속에서 자신의 탐구방법을 드러낸다. 즉 그것은 ‘사태’를 선입견 없이 ‘초월적’인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탐구하려 한다. ‘현상학’적 탐구에서 현상이 중요한 것은 그리스어 파이노메논의 의미 즉 ‘자신을 내보여준다’라는 해석 때문이다. 이는 ‘존재’가 논증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 현존재의 ‘일상성’이 주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다. 또한 ‘로고스’는 현상의 심층에 있는 것과 개념파악된 것의 ‘일치’를 다룬다는 점에서 은폐된 것을 은폐되지 않은 상태로 끌어올리는 힘이다. 따라서 현상학적 탐구방식에서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현상(파이노메논)과 이해(로고스)가 결합되어 있으며 이는 ‘존재’를 근원적(초월적) 차원에서 밝히는 방법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정리를 통해서 우리는 서론에서 하이데거가 확보한 문제의 장(場) 속으로 들어왔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부터 그것의 유효성을 부여하는 그의 방식은 그의 작업이 가진 유효성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존재와 시간』서문은 사유의 시작점이 되는 ‘문제’를 설정하고 전체 담론 속에서 그것이 가진 의미를 강력하게 설정하는 하나의 전범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텍스트이다. 이제 하이데거가 펼쳐놓은 지형 위에서 유의미한 재료를 건져 올리는 여행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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