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생활, 이해불가능한 타인
1.
일을 하는 동안엔 닥쳐오는 풍파들이 괴롭게 느껴진다. 특히나 이번 주엔 여기저기 전화할 일이 많았다. 온갖 불친절, 내 자존감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그야 말로 '타자'들과 관계해야 할 땐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이 하기 싫었던 적은 없다. 한번 더 움직이고, 한번 더 말하고, 한 줄 더 글을 쓰는 동안 내 존재의 강밀도는 더욱 커진다. 다시말해 그러는 동안 나는 '충전'된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이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활동성이 커질수록 충전율이 높아지고, 더불어 그 활동을 통해 타인들과의 공통성(보편성이 아니다)이 생성된다. 이런 형태로 삶이 구성되기 때문에 이미 '일'은 정치경제학적 의미의 '노동'이길 멈춘다. 그리고 '일'이 '노동'이길 멈춘 그것과 마찬가지로, 딱 그렇게, 타인은 이해불가능한 대상적 개체이길 멈춘다.
2.
사르트르 강의를 들었다.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의 저 유명한 명제는 타인이 이해불가능한 대상으로 남아있는 동안만, 노동이 가치산출의 원천으로 남아있는 동안에만 맞는 말이다. 그 동안 타인은 지옥이고, 노동은 지옥이다.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타자화'의 매커니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한 '벗어남'을 '탈주'라고 한다면, 보편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지옥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외부를 내부화(~에 대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외부와 동료가 되는 것이다.
일을 하는 동안엔 닥쳐오는 풍파들이 괴롭게 느껴진다. 특히나 이번 주엔 여기저기 전화할 일이 많았다. 온갖 불친절, 내 자존감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그야 말로 '타자'들과 관계해야 할 땐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이 하기 싫었던 적은 없다. 한번 더 움직이고, 한번 더 말하고, 한 줄 더 글을 쓰는 동안 내 존재의 강밀도는 더욱 커진다. 다시말해 그러는 동안 나는 '충전'된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이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활동성이 커질수록 충전율이 높아지고, 더불어 그 활동을 통해 타인들과의 공통성(보편성이 아니다)이 생성된다. 이런 형태로 삶이 구성되기 때문에 이미 '일'은 정치경제학적 의미의 '노동'이길 멈춘다. 그리고 '일'이 '노동'이길 멈춘 그것과 마찬가지로, 딱 그렇게, 타인은 이해불가능한 대상적 개체이길 멈춘다.
2.
사르트르 강의를 들었다.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의 저 유명한 명제는 타인이 이해불가능한 대상으로 남아있는 동안만, 노동이 가치산출의 원천으로 남아있는 동안에만 맞는 말이다. 그 동안 타인은 지옥이고, 노동은 지옥이다.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타자화'의 매커니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한 '벗어남'을 '탈주'라고 한다면, 보편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지옥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외부를 내부화(~에 대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외부와 동료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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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지?
선물해준 필름은 이제 겨우, 2통째. 어째 산만한 가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