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와 여기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음악을 들을 때, 좋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가슴이 두근거린다. 책이나 음악 이야기들은 모두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이고, 어떤 것에 담겨져 전해지는 것들이다. 이렇게 전해지는 것들이 듣고, 보고, 말하는 신체에 직접적인 변화(두근거림)를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것들이 당장 느껴지는 직접적인 변화(두근거림) 너머의 변화를 보여주고, 들려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담고서 현시하지 못하는 음악과 책과 이야기는 두근거림을 주지 못한다. 당장의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 너머의 변화를 어떻게 일으킬 수 있을까.
‘너머’는 어떤 벽 ‘너머’, 어떤 경계 ‘너머’이다. 참 싫은 것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아프고, 그것을 없애버리고 싶어할 때, 신체능력의 벽, 정서적 수용력의 경계가 실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벽과 경계의 실존이 희망적인 이유는 그것들의 실존이 표현하고 있는 ‘너머’ 때문이다. ‘벽’이 있는 곳에 너머가 있다. 두근거리게 만드는 문장들, 음악들, 이야기들은 그 벽들을 무시로 뛰어 넘어 ‘여기’로 온 것들이다. 그것들과의 만남이 두근거리는 이유가 밝혀졌다! ‘너머’에서 온 것들을 직접 만났다는 것이 ‘너머’와 ‘여기’가 늘 통하고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벽을 만들고, 그 벽을 쉬지 않고 부수고 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