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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프트베르크 Kraftwe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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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he Robots"

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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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의 베토벤

역시... 똥 쌀땐 베토벤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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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집에 오는 길에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빈필이 연주하는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들었다. 짧은 교향곡이라 30분 정도면 전곡을 다 들을 수 있다.

베토벤 5번은 아주 쉽다. 베토벤이 각 악구를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는지 알길이 없긴 하지만, 1악장의 그 유명한 동기부는 인간적인 어떤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 베토벤 스스로도 "운명은 그렇게 문을 두드리며 다가온다"라고 표현했듯이 그것은 '운명'을 맞이하는 주체의 외부로부터 다가온다. 이어지는 발전부는 긴박한 발걸음을 표현한다. 현이 주도하는 멜로디가 도피하는 주체의 의식을 표현하고, 리드미컬하게 전개되는 관악부는 그의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보여준다. 턱밑까지 쫓아오는 '운명'과 주체의 추격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는 잡힐 수 밖에 없다.

1악장의 동기부는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의 3악장에서 고스란히 사용된다. 열정과 운명. 여기서 '운명'의 정체가 드러난다. 운명은 우연적이지 않다. 그것은 열정이 충동적으로 소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는 그 소환의식에 개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열정에 '사로잡히'는 이상 열정 역시 아직 주체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번 교향곡의 2악장은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면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가 어떤 것인지 아주 잘 보여준다. 느리게 진행되는 가운데, 분절적인 현악의 울림은 긴박감을 만들어 낸다.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팀파니는 주체의 심장박동이다. 이 악장에 닥쳐온 운명에 대한 좌절과 고민, 슬픔의 정서가 완벽하게 스며있다. 그러한 정서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체는 결단한다. 결단의 순간이 의식의 평화로운 상태를 이룬다. 그 평화의 상태에서 주체는 운명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도망치고 싶어하는 상태와의 결별.

3악장에서 주체와 운명의 관계는 역전된다. 주체의 행진이 시작되고 운명은 주체 속으로 전개되면서 양자는 지양되어간다. 더블베이스에서 시작해서 바이올린까지 층층히 쌓여가는 음들이 의식의 고양상태를 표현하고, 이 고양은 상승하는 가운데 평화롭다.

4악장은 환희다. 베토벤이 쓴 아홉개의 교향곡에서 단 하나의 키워드만 꼽자면 그것은 '환희'다. 그것은 그의 교향곡 어디에나 있다. 이 환희가 없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5번 교향곡 4악장은 운명을 품은 주체의 행진곡이다. 이 행진은 환희에 휩싸여 있다. 빛의 이미지. 주체와 저편의 운명이 하나로 통일되는 순간 터져나온 빛의 이미지다.

아 이런... 아빠가 베토벤 바이러스에 심취했는지 거실에서 새벽까지 TV를 보는 통에 잠을 못자고 있다. 그래서 결국 나도 베토벤으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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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하스킬의 연주와 굴다의 연주

베토벤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굴다의 '또로롱'거리는 톤이 모짜르트에서는 더할나위없는 장점이 된다. 협주곡 연주에서는 늘 뒤로 숨는 듯하는 아바도와 빈 필은 이곡에서 아주 약간 에러다. 너무 차분하다.

반면에 하스킬 여사의 피아노는 그의 생애만큼이나 힘겹다. 그래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미소를 곡 전체에 흘리고 있다. 오케스트라 역시 적절한 벨런스를 취하면서 얼굴을 내밀로 나올 때가 언제인지 확실히 알고있다.

모짜르트의 장조곡들이 가진 그 기쁨의 에너지야 다시 말할 것도 없지만, 단조곡들의 빛나는 절망돌파도 눈물나게 아름답다. 어려운 상황에서 절망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대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행'을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짜르트는 어느 곡에서든 그걸 해낸다. 고통에서 한걸음 나가는 법을 보여준다. 절망으로 똘똘 뭉친 '지금'이 사실은 얼마나 찰나에 불과한 것인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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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Fournier, Bach : The 6 Cello suites

본음이 지나고 난 후에 남는 소리들이 너무 좋다. 그 소리들이 유려한 흐름을 만드는 게 아닐까? 카잘스가 파도라면, 푸르니에는 강물같다. 포르테류의 강한 소리들이 날 때마다 심장이 저릿저릿하다. 그 느낌은 카잘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경우엔 공포나 두려움이 더 크지만, 이번엔 연민에 가까운 저릿함이다. (무반주 첼로 조곡 중에서)가장 좋아하는 1번 3악장은 재치있다. 더불어 '흐름' 유지하는 것에 중점을 둔 연주이다보니 음의 고저에서 오는 긴박감보다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긴박감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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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어제 바흐에 이어서 오늘은 종일 모짜르트를 듣고 있다. 온갖 생활소음들과 뒤섞여도 불쾌감이 오지 않는 클래식 음악은 모짜르트가 유일하다. 그 정도로 모짜르트는 세계와 구분되지 않는다. 바로 그 지점이 모짜르트를 특별하게 만든다. 베토벤 이후로 낭만파나 현대 음악가들이 별별짓을 다해서 이루는 어떤 경지를 모짜르트는 방구 한번 뀌는 정도로 이룬다. 그 어떤 과장도, 축소도 없이 딱 그 정도를 구현한다.

지금 시대에 모짜르트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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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Casals, Bach : The 6 Cello suites

견고하다. 너무 꽉 짜여서 숨쉬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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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현악 사중주들

음악을 듣다가 문득 생각했다. 모짜르트와 동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가!
분명 귀족으로 태어나진 않았을테고, 그렇다면 음악을 듣기에도 극악한 환경이었을 텐데, 서민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가... ㅠㅠ

* * *

전에 친구랑 이야기 하다가, 모짜르트 음악은 어느 때에나 아다리가 맞는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슬플 땐 슬프게 들리다가도 어느새 기분을 일으켜 세우는가 하면, 기분이 좋을 땐 한 껏 방귀소리를 뿜어대며 기분을 고조시킨다. 어느 쪽이든지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감정을 이끈다. 물론 정말 극도로 우중충한 곡들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곡들이 가진 위대함은 그 황홀한 재치와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전개에 있다.

"이때는 내면성이라는 것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때는 아직 일체의 외부적 세계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혼에 대립되는 타자도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카치가 그리스 문학에 대해 한 저 말은 그야말로 모짜르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그의 영혼은 이미 우주이고, 우주는 이미 그의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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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stakovich String quartet No. 4 D major

당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던 그 사람. 탄압은 불안을 만들고 불안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말러가 허한 대지 위에, 아니 황무지 위에 뭔가 심어보려고 무진장 노력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데 반해, 그의 음악은 허하고 어두운 공간 위에 그냥 놓여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거기엔 그저 불안의 흐름이 둥둥 떠다닌다.

어떤 정화와 극복의 노력이 엿보일지라도 불안의 정서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노력들은 이미 불안의 표현이 되어버린다. 1악장 중반에 조바꿈이 일어나는 것인지, 분명 major라고 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음울한 정서가 악장 한복판에서 피어오른다. 이것이 하나의 좌절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부분을 지나가고 난 후에는 어떤 웃음도 공포를 덜어내기 위한 웃음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어떤 '불안정'의 상태로 나를 몰아넣고 싶을 때 쇼스타코비치를 듣는다. 그 상태가 되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이 느낌은 어떤 적극적인 활동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그 활동을 분해하고 싶은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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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미컬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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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여장의 CD가 있다고 하면 다들 기본적인 건 다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 정말 기본 중의 기본이 없는 경우가 많다. -_-;
이를테면 너바나의 해적판 부틀렉은 있어도 네버마인드 앨범은 없는 식이다.
남들은 맛탱이 갔다고 않듣는 캐미컬 브라더스를 오늘에야 들었다.
죽인다...헤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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