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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의 탈출

곰이 우리 안에 있는 것과 산 속에 있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곰에게 적합한 것일까? 곰이 ‘탈출’했다는 표현, ‘숨어’있다는 표현들 모두 이상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우리는 보통 더 어울리는 곳으로 간 것을 ‘탈출’이라고 부르고, 자기를 피하면 ‘숨는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부디 잡히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청계산에서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

가장 좋은 것은 ‘말레이 곰’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사는 것이지만, 이미 불가능한 일. 지리산 반달곰이 있는 곳에라도 보내주면 안 되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반달곰과 함께 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이가 무언가 잘못을 하면 그것을 되돌려 놓으라고 시키는 인간들이 자신이 저지른 것들을 다시 돌려놓는 경우는 참 드문 것 같다. 어릴 때는 돌려놓을 수 있는 일들을 저지르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저질러 놓곤한다.

가장 나쁜 것은 산 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산에서 ‘곰’으로 죽는 것이 그 곰에게는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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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과 코뮨주의 _ ide.read list

<사장님 글들>
<추방과 탈주> _ 앎과 삶의 문제에 관한 부분.
<코뮨주의 선언> _ 윤리학과 관련된 부분들.
<코뮨주의> 존재론, 생산, 윤리
다니가와 간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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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
1) ‘지식’에 관해서 생각해 봐야 함. ‘지식’과 ‘출판’의 관계를 정리하고, ‘지식생산’이 ‘출판’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2) 출판을 활동의 관점에서 정의. ‘출판활동’과 ‘지식생산’을 결부시키기.
3) ‘출판-지식 활동’과 ‘그린비의 활동’

윤리학
1) 어떤 ‘활동’이 어떤 ‘삶’을 변화시키는가? 내부적 차원과 외부적 차원.
2) 저자-그린비-독자의 운동 매커니즘.
3) 웹-편집-디자인-관리, 각 부분의 운동 매커니즘.
= ‘리듬’ : 동료들과 리듬을 맞추는 것,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평면에서 운동하는 것. 이러한 활동을 독자-저자와 이어가기.
= 속도 : 편집부의 속도 : 책의 속도, 웹팀의 속도 : D컨텐츠의 속도, 관리의 속도 : 그린비의 속도. 활동과 조응하는 컨텐츠의 속도들. 속도들의 공통성.
= 독자와 저자는 ‘외부’. 외부에 의해 사유하기, 외부를 통해 사유하기. ‘외부를 통해 활동하고, 외부에 의해 활동하기’. ‘외부-내부’를 가로지르는 운동.
= ‘리듬의 반복’ : 독주-협주-관현악-연주:감상으로 확대되어 가는 평면.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 관리자 – 팀 – 그린비 – 저자 – 독자’ = 지식의 평면, 출판의 평면.
= 평면의 성질을 결정하는 특이점들, 평면의 성질로서의 특이성. 그린비의 특이점들, 특이성들(사람이 아니라, 성질로 정의할 것)
= 출판은 ‘지식의 평면에서 공통의 리듬을 산출하는 운동’. 리듬이 생길 때 평면이 생기고, 평면을 만들어가는 운동 속에서 ‘변화’가 일어남.
4) 더 좋은 ‘삶’을 자신에게 선물하기.
= ‘변화’의 운동 속에 놓인 삶. 변하지만 불안하지 않은 평면.

종합
- 지식의 세계에서 ‘공작자-되기’. 루쉰 고정된 자는 없고 ‘중재자’만 있을 뿐.
- 스스로 변하면서 세계를 변화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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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29~30

#1 : 아주 작은 차이들
나쁜 감정과 좋은 감정, 선호와 혐오, 능력과 무능력, 분노와 평화, 기쁨과 슬픔, 교만과 겸손 등등. 이것들 모두가 대립항들로만 보이지만, 사실은 대립항이면서 인접항이기도 한 것들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순수상태는 없는 법이고, 늘 비율적으로 섞여있게 마련이니까. 따라서 ‘대립’들 사이에 무수한 것들이, 미세한 비율의 차이를 가지고 섞여있는 것이다. 그러한 ‘아주 작은 차이들’ 때문에 배치가 달라지고, 그 배치들의 다름들 덕분에 ‘희노애락’이 있는 것이다.

찬물과 더운물이 각자의 온도차를 넘어서 어떤 ‘평형상태’를 이루듯이 비율이 서로 다른 신체들의 집합체도 어느 시점에서는 그러한 평형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그 사이에 무수한 갈등들이 있을 것이고(자기 온도를 포기해야 하니까), 온갖 괴로움들도 닥쳐올 것이다(변이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갈등과 괴로움만이 있다면 어떤 평형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만물이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들의 비율적 관계에 따라 생성된 것이라고 한다면, 갈등과 괴로움 속에도 분명히 기쁨과 쾌감이 섞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체의 수준, 신체들의 집합체의 수준에서 ‘평형상태’를 이루려는 운동이 멈추지 않고 일어나는 것과 같이, 정서의 수준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똑같이 일어난다. 어떤 형식으로든 ‘평형상태’는 찾아오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하고 있는 운동들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

#2 : 추상의 시야와 구체의 시야
서로 참 다른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능력자’는 양쪽을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의 이름이다. 양쪽의 능력과 무능력을 모두 볼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3 : 컨퍼런스
‘컨퍼런스’라고 이름 붙은 자리들은 늘… 실망스럽다. 그래도 몇가지 중요한 것들을 얻었다. ‘뭐가 달라?’라고 묻지 않아도 될만큼 다른 것과의 대조 속에서는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를게 있어?’라는 질문이 쉽게 나오는 것과의 대조 속에서 ‘차이’를 볼 때, 우리가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 C 또는 P 출판사과 그린비의 관계가 후자의 대조를 보여준다.

#4 : 기쁨의 감응, 웃음의 힘
웃음은 참 전염성이 강하다. 경험할 떄마다 놀란다!

#5 : 장 막스 끌레망의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이하 무반주) 음반
무반주 연주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걸 꼽으라면, 두말 없이 빌스마를 꼽는다. 두번째는 야노스 슈타커였는데, 이 음반으로 순위에 변동이 생겼다. 빌스마는 1위 수성, 끌레망 2위 입성, 슈타커는 3위. … 바흐는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흐는 리듬감과 속도감이 넘실거리고 변화무쌍한 바흐다. 빌스마는 리듬, 끌레망은 변화무쌍, 속도감은 슈타커.

#6
우여곡절 끝에 좋은 하루였다. 역시 잘 해석하는 게 참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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