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아주 작은 차이들
나쁜 감정과 좋은 감정, 선호와 혐오, 능력과 무능력, 분노와 평화, 기쁨과 슬픔, 교만과 겸손 등등. 이것들 모두가 대립항들로만 보이지만, 사실은 대립항이면서 인접항이기도 한 것들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순수상태는 없는 법이고, 늘 비율적으로 섞여있게 마련이니까. 따라서 ‘대립’들 사이에 무수한 것들이, 미세한 비율의 차이를 가지고 섞여있는 것이다. 그러한 ‘아주 작은 차이들’ 때문에 배치가 달라지고, 그 배치들의 다름들 덕분에 ‘희노애락’이 있는 것이다.
찬물과 더운물이 각자의 온도차를 넘어서 어떤 ‘평형상태’를 이루듯이 비율이 서로 다른 신체들의 집합체도 어느 시점에서는 그러한 평형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그 사이에 무수한 갈등들이 있을 것이고(자기 온도를 포기해야 하니까), 온갖 괴로움들도 닥쳐올 것이다(변이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갈등과 괴로움만이 있다면 어떤 평형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만물이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들의 비율적 관계에 따라 생성된 것이라고 한다면, 갈등과 괴로움 속에도 분명히 기쁨과 쾌감이 섞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체의 수준, 신체들의 집합체의 수준에서 ‘평형상태’를 이루려는 운동이 멈추지 않고 일어나는 것과 같이, 정서의 수준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똑같이 일어난다. 어떤 형식으로든 ‘평형상태’는 찾아오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하고 있는 운동들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
#2 : 추상의 시야와 구체의 시야
서로 참 다른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능력자’는 양쪽을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의 이름이다. 양쪽의 능력과 무능력을 모두 볼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3 : 컨퍼런스
‘컨퍼런스’라고 이름 붙은 자리들은 늘… 실망스럽다. 그래도 몇가지 중요한 것들을 얻었다. ‘뭐가 달라?’라고 묻지 않아도 될만큼 다른 것과의 대조 속에서는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를게 있어?’라는 질문이 쉽게 나오는 것과의 대조 속에서 ‘차이’를 볼 때, 우리가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 C 또는 P 출판사과 그린비의 관계가 후자의 대조를 보여준다.
#4 : 기쁨의 감응, 웃음의 힘
웃음은 참 전염성이 강하다. 경험할 떄마다 놀란다!
#5 : 장 막스 끌레망의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이하 무반주) 음반
무반주 연주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걸 꼽으라면, 두말 없이 빌스마를 꼽는다. 두번째는 야노스 슈타커였는데, 이 음반으로 순위에 변동이 생겼다. 빌스마는 1위 수성, 끌레망 2위 입성, 슈타커는 3위. … 바흐는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흐는 리듬감과 속도감이 넘실거리고 변화무쌍한 바흐다. 빌스마는 리듬, 끌레망은 변화무쌍, 속도감은 슈타커.
#6
우여곡절 끝에 좋은 하루였다. 역시 잘 해석하는 게 참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