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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팡세>의 문장들

종교는 싫지만, ‘종교적 에토스’는 좋다. 그런 점에서 <팡세>에도 좋은 구절들이 참 많다.

*티치아노의 [콘체르토], 신윤복의 [임하투호]는 앰블럼… 같은 것. ‘오락’들.
**앞의 숫자는 문단 번호


24 : “나는 인간을 찬양하는 쪽을 택했던 사람들과 비난하는 쪽을 택했던 사람들, 그리고 오락을 즐기는 쪽을 택했던 사람들을 똑같이 비난한다. 나는 신음하면서 찾고 있는 사람들 외에는 인정할 수가 없다.”

25 : “우리들은 모든 독단주의로서도 극복하기 어려운 증명의 무능력자들이다. 우리들은 모든 회의주의로서도 극복하기 어려운 진리에 대한 관념의 소유자들이다.”

33 : “우리들의 비참을 위로해 주는 유일한 것은 오락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들의 비참 중에서도 가장 큰 비참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주로 우리 자신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여 모르는 가운데 죽어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것이 없다면 우리들은 권태를 느끼게 될 것이고, 이 권태는 우리들로 하여금 거기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는 보다 확고한 방법을 찾도록 부추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락은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무의식 중에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다.”

77 : “사소한 것이 우리를 슬프게 만들기 때문에, 사소한 것이 우리를 위로해 준다.”

106 :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은 적어도 자기의 삶을 조절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보다 더 지당한 것은 없다.”

146 : “인간의 위대성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 있다. 나무는 자기가 비참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557 : “인간은 천사도 짐승도 아니다. 그런데 불행한 일은 천사가 되고 싶어하던 자가 짐승과 같이 되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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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 들뢰즈

“…식욕은 자기를 보존하는, 즉 지금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고, 성욕은 후손을 보존하는, 즉 영구한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다. 먹고 마시는 것은 결코 죄악이 아니요, 불결한 것도 아니며, 성교도 역시 죄악이 아니요, 불결한 것도 아니다. 먹고 마신 결과 자신을 기르게 되지만 그것은 자신에 대한 은혜가 아니다. 성교의 결과 자녀가 태어나지만 그것은 물론 자녀에 대한 은혜로 여길 수 없다. —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모두가 생명의 긴 여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선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가 누구의 은혜를 입었는지 구분할 수 없다.” – 루쉰, <무덤>, [지금 우리는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할 것인가], 204쪽

“각각의 삶이 어떤 지나가는 현재라면, 하나의 삶은 다른 삶을 다른 수준에서 다시 취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철학자와 돼지, 범죄자와 성인이 거대한 원뿔의 서로 다른 수준에서 똑같은 과거를 연출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윤회라 불리는 것이다. 각각의 인물은 자신이 낼 소리의 높이나 색깔, 아마 가사까지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가사가 붙든지 곡조는 늘 같고, 음고와 음색이 아무리 달라져도 후렴(tra-la-la)은 늘 같아진다.” – 들뢰즈, <차이와 반복>,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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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러인가?> 인용

1. 집시음악, 시민사회

189쪽 : “…말러는 도시 사람들을 경멸하는 집시의 생활을 투박한 날것 그대로 그리고 있다. 법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 기거하는 계층, 시민사회가 두려워해마지 않는 길들여지지 않는 계층의 음악을 세련된 도시 문명인들의 면전에 들이댄 것이다. 집시 음악을 교육받은 작곡가들의 손으로 식민화할 수 있는 원시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활력을 가진 하나의 온전한 예술 형태, 표준에서 벗어난 음고로 조율되고 익숙하지 않은 음계로 연주되는 예술로 취급한 말러의 음악에 시민사회가 느낀 공포는 한층 더 거셌다.”

2. 채식주의자

191쪽 : “성 루카는 소를 도살하고, 성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는다. 채식주의를 실천했던 말러는 동물의 권익 옹호론을 설파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피조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천국이 아닌, 오로지 인간들에게만 천국인 곳의 모습이다. 과연 하느님이 원한 것이 이런 모습일까? 아니면 살의를 영원히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 의지의 반영인가? 말러가 그린 천국의 모습은 패러디 없이도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불편하다.”

3. 소수자, 소수자에 대한 태도

192쪽 : “훗날 리터는 슬로바키아 출신의 동성 연인 얀코 카드라를 말러에게 소개했다. 상궤를 벗어난 커플로부터 그 어떤 불편한 느낌도 받지 않은 말러는 리터에게 보내는 편지에 얀코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도덕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마뜩하게 여기지 않은 포용론자 말러는 소수 인종에 대해서도, 성적 소수자에 대해서도 아무런 편견을 가지지 않았다. <교향곡 4번>의 다문화주의는 헛된 제스처가 아니었던 것이다. 말러는 이방인들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감싸 안음으로써 또 한 번 시대를 앞질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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