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이란 창조하는 것이니까요”
배반자가 되고자 꿈꾸는 사람은 많습니다. 이들은 [신을 믿듯] 배반자를 믿고, 배반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요. 하지만 이들은 단지 협잡꾼에 불과합니다. 프랑스 문학에서 모리스 작스의 딱한 예를 보세요. “아, 마침내 나는 진정한 배반자가 되었구나”라고 말하지 않는 협잡꾼이 어디 있습니까? 반면, 배반자는 “나는 결국 협잡꾼에 불과했구나”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요. 이는 [그만큼] 배반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배반이란 창조하는 것이니까요. 배반자가 되려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 얼굴을 잃어야 합니다. 사라져야 하고 미지의 것이 되어야 하지요.
- 들뢰즈, <디알로그>, 89쪽유머는 배반이고 뒤통수를 치는 것입니다. 유머는 무조적이고 전적으로 지각 불가능하며 무엇인가가 실 풀리듯 풀려 질주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중간에, 길 위에 있죠. 또한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하는 일일랑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유머는 표면에 있습니다.
- 같은책, 130쪽
(자의식의) ‘배반자’, (알수없는) ‘미지의 것’, (끝없는) ‘길’, (바닥도 천장도 없는) ‘표면’. “나는 실패, 살아 있는 실패, 그 무엇도 죽이지 못하는 나는 웃는 실패, 실패들이 품어 기른 최후의 희망”(박노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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