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010

“배반이란 창조하는 것이니까요”

배반자가 되고자 꿈꾸는 사람은 많습니다. 이들은 [신을 믿듯] 배반자를 믿고, 배반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요. 하지만 이들은 단지 협잡꾼에 불과합니다. 프랑스 문학에서 모리스 작스의 딱한 예를 보세요. “아, 마침내 나는 진정한 배반자가 되었구나”라고 말하지 않는 협잡꾼이 어디 있습니까? 반면, 배반자는 “나는 결국 협잡꾼에 불과했구나”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요. 이는 [그만큼] 배반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배반이란 창조하는 것이니까요. 배반자가 되려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 얼굴을 잃어야 합니다. 사라져야 하고 미지의 것이 되어야 하지요.

- 들뢰즈, <디알로그>, 89쪽

유머는 배반이고 뒤통수를 치는 것입니다. 유머는 무조적이고 전적으로 지각 불가능하며 무엇인가가 실 풀리듯 풀려 질주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중간에, 길 위에 있죠. 또한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하는 일일랑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유머는 표면에 있습니다.

- 같은책, 130쪽

(자의식의) ‘배반자’, (알수없는) ‘미지의 것’, (끝없는) ‘길’, (바닥도 천장도 없는) ‘표면’. “나는 실패, 살아 있는 실패, 그 무엇도 죽이지 못하는 나는 웃는 실패, 실패들이 품어 기른 최후의 희망”(박노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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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31

#1
오후 두시쯤 일어나서 밥 먹고, 한 시간 정도 음악을 들었다. 머리가 조금 뻐근한 느낌이 들어서 그냥 두면 두통이 올 것 같아서 산책을 나갔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제 분에 못이겨서 오는 두통하고는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아무래도 원래 음陰 기운이 많으니까, 휴일에 집에만 있으면 그것들이 갈 곳을 잃고 머리를 공격하는 것 같다.(맞을라나?) 뭐 어쨌든, 그래서 햇볕의 꼬리라도 잡아볼까 하는 생각에 나선 산책은 참 좋았다.


드문드문 공원을 걷고 있는 가족들도 보이고, 청솔모도 한마리 봤다. 그 넓은 틈새를 혼자 걷는 것이 약간 쓸쓸하달까 하는 기분도 들었지만, 발바닥에 전해지는 감각을 느끼기엔 그 편이 더 좋았다. 느리게 30분 정도 걷고, 돌아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 시계 건전지, 가루녹차 한 통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걷고나니 저녁 입맛도 좋고, 두통도 완전히 사라졌다.

#2
한차례 마음의 풍파를 겪고 난 후라 그런지 귀가 아주 예민해진 느낌이다.(무슨 상관이람?)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분명 상관이 있다. 음악이 정서의 상승국면에 강한 힘을 내도록 도와주니까!

드뷔시, <달빛> Debussy, <Clair de L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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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체적 통일성, 개체군적 일관성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성당 벽화
이응로, <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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