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010

벤야민, <경험과 빈곤> : 새로운 야만성

  경험의 빈곤은 그를 처름부터 다시 시작하는 데로 이끈다. 새롭게 시작하기, 적은 것으로 견디어내기, 적은 것으로부터 구성하고 이때 좌도 우도 보지 않기이다. 위대한 창조자들 중에는 인정사정 없는 자들이 항상 있었는데, 이들은 일단 판을 엎어버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중략)
내면성이 아니라 내면에 복종한다. 그것이 그들을 야만적으로 만든다.
  여기저기에서 일찍이 최고의 머리들은 이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시대에 일말의 환상도 품지 않으면서 그 시대에 온몸으로 몰입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 선집5 <경험과 빈곤>, 174~175

데카르트도, 아인슈타인도, 브레히트도 물려받은 모든 것들의 파괴하고 시작하거나, 물려받은 것들 속의 ‘불일치’ 속에서 시작했다. ‘내면성이 아니라 내면에 복종’한다는 것은 지키려는 노력이 아니라 개방하려는 노력, 섞여들어가고자 하는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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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질문이 이미 답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제기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다. 답할 수 없는 질문은 제기될 수도 없다. ‘질문’은 답을 호출해내는 역할을 한다. 답들이 질문을 만들고, 질문이 답을 찾아준다. 삶을 잘 산다는 것은 무수한 의문들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 의문들이 품고 있는 답을 질문을 통해 다시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세계(질문-답)는 이미 무결하게 주어져 있다. 문제는 그것들이 품고 있는 무한의 결들을 읽어내는 것. 두 개의 눈, 두 개의 귀로 보고 듣는 것보다 더 많은 눈과 귀들로 보고, 듣고, 서로 말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짧은 시간의 대화, 감응 만으로도 질문이 생기고, 질문에 대한 답도 생겨난다. ‘질문’조차 제기하기 힘든 문제라고 여겼던 것들이 그 짧은 감응의 순간 속에서 해소된다. 공동체적 사랑을 믿어라.

#2
‘강렬한 30분’이 왔다. 모짜르트 교향곡들은 짧은 것들이 많아서 30분이면 충분하다. (보통 교향곡은 ‘길고, 지루한 클래식 음악’으로 표상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이미지는 아마도 점점점 거대해져갔던 낭만주의-후기낭만주의가 만들어 낸 선입견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리기 15분 전쯤부터 듣기 시작해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오는 15분 동안 듣는 모짜르트 교향곡은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는 맑은 물, 갑갑한 가슴에 흘러든 생수같다. 밤 하늘에 가까이 다가간 육교에서 찰랑거리는 스케르초를 들을 때, 불편함, 슬픔, 우울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바이올린과 목관악기들의 교차는 소리로 만든 봄비 같다. 비온 뒤 시작되는 오케스트라 총주는 비가 그친 후 모습을 드러낸 청명한 하늘이리라. 답할 수 있는 질문만이 제기되는 것과 같이 좋은 음악은 좋은 상태일 때 들어야만 좋은 음악이 될 수 있다. 내가 좋은 상태일 때 모짜르트는 위대한 친구가 되고, 그의 곡들의 우정의 선물이 된다. 내가 나쁜 상태일 때 그는 단순한 위로가 될 뿐이다.


Mozart symphony NO.36

#3
번뇌나 갈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길러야겠다. 아무리 능숙한 농부라 하더라도 그는 땅의 생장력, 자연의 우발성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사랑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는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용기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만한 것이다.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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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1029

가을 몸

- 박노해

비어가는 들녘이 보이는
가을 언덕에 홀로 앉아
빈 몸에 맑은 별을 받는다

이 몸 안에
무엇이 익어 가느라
이리 아픈가

이 몸 안에
무엇이 비워 가느라
이리 쓸쓸한가

이 몸 안에
무엇이 태어나느라
이리 몸부림인가

가을 나무들은 제 몸을 열어
지상의 식구들에게 열매를 떨구고
억새 바람은 가자 가자
여윈 어깨를 떠미는데

가을이 물들어서
빛바래 가는 이 몸에
무슨 빛 하나 깨어나느라
이리 아픈가
이리 슬픈가

——————
며칠 전의 나에게,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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